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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모으기와 인간관계

by 긍정왕수전노 201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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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장인어른을 천상으로 보내드리고 온 후 수전노인 저는 또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결혼식때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랄까요?

꼭 기록해뒀다가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회상해보고 싶은 감정이라 블로그에 글을 남겨봅니다.

제일 먼저 한평생 고단한 삶을 잘 견뎌오신 장인어른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언제나 당연하게 곁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도 언젠가는 떠나실 수 있다는 걸 또한번 느꼈고 이제 남은 저희 부모님, 장모님께 섭섭함 없이 자식된 도리를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장례식 기간동안 "돈 모으는 일과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저, 긍정왕수전노의 수전노 행각은 7살? 그정도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본디 욕심이 많은 천성을 타고 태어났으나 현실을 가질 수 없는게 너무 많은 상황이라 스스로 돈을 모아서 뭔가를 사곤했던 습관이 더욱 굳어지면서 돈을 안쓰고 모으는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장 갖고 싶은걸 사기위해 모으기보다는 더 많이 모아서 뭐든 사고 싶은거 살 수 있는 부자가 되는게 목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부모님한테 받는 용돈으론 답이 없어보여 10살무렵에는 동네 친구 꼬득여서 온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공병을 주워다 모으고 또 모아서 슈퍼에 갖다 팔아서 용돈을 번 적도 있었네요. 이거 뭐 박명수도 공병을 주웠다더니...ㅋ 돈욕심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인가요?

제 스스로에게도 모으기만 할뿐 쓰는 것에 인색하다보니 당연히 타인에게 베푸는 건 정말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를 잘 알면서도 견뎌온 오랜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할 따름이네요.)

어른이 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 한다는 소식을 전할때 정말 친한사이가 아니면 모른체한적도 솔직히 많습니다. 부고 소식을 듣고도 그런적 있었구요. 경조사 비용 나가는것 마저도 아까웠기 때문이겠죠.

이런 저를 잘 아는 부모님, 친척분들이 가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곤 하셨지만 그때만 듣고 흘려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계속 "곶간에서 인심난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남을 돌아볼 수 있을때까지는 최대한 나에게 집중해서 모으고 또 모으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로는 제 자신한테까지 채찍질하며 버스정거장 3정거장 이내는 무조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옷은 1년에 한두번 사기, 가끔 가는 광주는 무조건 일반고속버스를 탔죠. 택시 타는건 죄악이요, 타행 ATM기에서 현금 인출이라도 한 날에는 수수료때문에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았던 적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저 돈돈 거리면서 주변사람한테 인색했던 사람들은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막상 본인에게 경조사가 생기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딱 본인이 아는 수준, 생각하는 수준으로만 본다더니 제가 딱 그짝이어서 결혼을 앞두고 과거에 청첩장 받고도 쌩깠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며 텅빈 결혼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악몽도 가끔 꾸곤 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밥 한번 제대로 산적없던 제 과거를 조금이나마 반성하며 청첩장 돌릴때는 과감히 밥을 사고 다니긴 했는데 아무튼 마음이 편치 않더군요.

다행히도 결혼식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셨고 축의금 봉투를 정산하며 적잖이 놀랐고 무안했고, 부끄러웠고 죄송스러운 감정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제가 청첩장 받고도 결혼식 가지 않았던 분들도 참석해주셨고 축의금도 주셨더군요.

아! 이번 장인어르신 상을 치르면서도 지인들에게 연락을 제대로 하지 않았음에도 저와 수전노로 돈모으기 경쟁하던 인생의 라이벌 친구가 회사 반차휴가까지 쓰고 불쑥 장례식장에 참석해준 걸 보고 또한번 망치로 머리를 후두려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과연 나라면 이렇게 와줬을까?"

나보다 더 돈 안쓰고 모으던 친구도 이제는 이렇게 지인들의 애경사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나도 "곶간에서 인심날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 모으는 것도 좋지만 인간사회라는게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상부상조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물론 여전히 갖고 싶은거 다 가질 수 있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만, 아래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반드시 전자를 골라야 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전재산 10억과 내 장례식에 와줄 수 있는 지인 100명" VS "전재산 1000억과 내 장례식에 와줄 수 있는 지인 10명"

그리고 또 하나,

제 첫직장이자 애증이 담겨있는 우리 회사를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다녀야겠다... 그러려면 회사에 가치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섰습니다.

뭐 이렇게 해서 나이든 분들이 꼰대가 되는건가 싶긴합니다만 회사원이라서 참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입니다.

회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애경사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연락할 수 있고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랄까요. 물론 저도 다른 분들께 그런 존재가 되어야 겠죠.

이번 일을 치르며 평소에 조금은 서먹했던 분이 선뜻 연락을 주시고 마음을 표해주시는 걸 보고 정말 또한번 몸둘바를 몰랐고 짧게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드렸는데 "은혜"라는 말이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무거운 말이더군요.

근 33년을 그 누구보다 치열한 수전노로 살아왔기에 소기의 목적도 어느정도 달성했으니 이제는 좀 더 주변을 둘러보고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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